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포르 냐싱베 (문단 편집) == 생애 == 냐싱베는 [[프랑스]]의 [[파리 도핀 대학교]]와 [[미국]]의 [[조지 워싱턴 대학교]] 등지에서 공부를 한 뒤 아버지의 재정 고문관으로 일했는데, 주요 업무는 [[외국]]에 있는 [[가족]] [[재산]]을 관리하는 것이었다고 한다. 36살에 [[국회의원]]에 선출되었고, 이후 통신 장관과 광산 장관 등을 맡아 아버지의 측근이 되며 권력기반을 다져 나갔다. 아버지는 아들이 정계에 진출하자 토고의 [[헌법]]을 고쳐서 아들이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대통령 출마 자격을 40살에서 35살로 바꿔 놓는 헌법 개정을 했다. 그리고 아버지 냐싱베 에야데마가 [[2005년]]에 [[심장마비]]로 [[사망]]하자, 그는 몇 시간 만에 군부의 지원을 바탕으로 대통령직을 승계했다. 그러나 시민과 야당의원들은 대통령이 사망했을 때 60일 안에 대선을 치를 것을 규정한 헌법을 지킬 것을 요구했고, [[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]]와 [[아프리카 연합]] 등도 토고의 [[민주화]]를 하라고 압박하자 그는 3주 만에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 2005년 4월 24일 [[대선]]을 치렀다. 투표 집계 결과 그의 지지율 60%로 집계되었고 당선이 확정되자 [[야당]]이 대규모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[[시위]]를 시작했다. 그러나 냐싱베는 이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여 1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. 국제앰네스티는 2005년 [[선거]] 과정에서 [[고문]], [[강간]], [[살인]] 등이 있어서 400여명이 숨졌으며, 투표함이 탈취되기도 했다고 발표했다. [[http://news.khan.co.kr/kh_news/khan_art_view.html?artid=201003071846505&code=970209|자료]]. 또한, 야당 진영의 거센 반발에도 대통령 취임식을 열어 “국가 개발과 복지, 평화와 국민통합에 집중하겠다”라며 대통령이 되었다. 이후 토고의 주민 2만여명은 인근 나라로 피난을 떠난 상태라고 한다. 포르 냐싱베는 취임 후 야당의 정치활동 확대, 반정부 인사 석방 등 유화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으나, 아직은 50세(1966년 생)에 불과하여 계속 선거에 당선된다면 더 장기집권을 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. 실제로 집권 2기 냐싱베의 과제 중 하나는 과거사 청산인데, 2005년 대선 이후 그는 야당 측과 ‘평화협정’을 맺으며 ‘진실과 화해를 위한 위원회’ 설치에 합의했다. 이것은 아버지 통치기간 중에 벌어진 인권침해 등에 대해 밝히겠다는 건데, 문제는 2006년 출범한 이 위원회는 현재까지도 공식 활동을 시작도 하지 못해서 정말로 할 생각이 있는지가 의문이란 거다. 다만 선거는 '''꽤나 공정하게''' 치러져서 딱히 [[비판]]하기도 뭐한 상황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